[21.03.26] 시스템반도체 오늘 주문하면 연말 돼야 받는다

공급부족 넘어 '가뭄' 상황

◆ 혼돈의 반도체 시장 (下) ◆

자동차 반도체에서 시작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정보기술(IT)·가전 분야로 번지고 있다. 반도체를 수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 능력을 넘어서는 주문이 쏟아지면서 신규 주문 시 대기 기간이 6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구동칩(DDI)과 가전제품용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국내 IT·가전 대기업들의 신제품 개발이 지연되는 등 반도체 수급 현황은 '부족'을 넘어 '가뭄'으로 악화되고 있다.

2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은 대만 TSMC에 신규 주문 시 최소 4~6개월을 기다려야 생산을 기대할 수 있다. 통상 파운드리 업체가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2~3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기 기간까지 합쳐 오늘 당장 발주를 넣어도 연말에나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인 DB하이텍 역시 지금부터 발주되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수개월이 지나야 생산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라인도 대기열이 수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연말까지 생산 일정이 꽉 찬 상태여서 기존 거래 고객이 아니면 신규 주문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며 "기존 고객도 긴급한 상황에 한해 추가 주문을 받아주고 있는데 일러도 연말에나 제품 인도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 이어 냉장고 밥솥까지 반도체 칩 대란…"30% 웃돈줘야 주문"

끝 안보이는 반도체 공급대란

신형 가전개발 줄줄이 지연
삼성 갤노트 신모델 안내기로
"올해 車193만대 생산차질"

양산用비축 부품 동나면
국내 가전라인 가동 중단

대만 가뭄에 생산 차질
수에즈운하 마비까지 겹쳐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SEV)의 휴대폰 공장 생산 라인 모습. [사진 제공 = 삼성전자]매출 기준 국내 3대 생활가전 대기업(삼성전자·LG전자·대유위니아그룹) 중 한 곳으로 꼽히는 A사는 올 초부터 TV·냉장고에서 전자레인지에 이르는 가전 전 제품의 신모델 개발 지연을 겪고 있다. 신제품 샘플을 제작할 때 필요한 디스플레이구동집적회로(DDI) 반도체 공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A사는 샘플용 DDI가 들어올 때마다 시급한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수개월씩 개발 일정을 미루고 있다.

DDI는 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작동시키는 데 필수적인 반도체 부품이다. 신형 자동차부터 스마트폰, TV·생활가전, 심지어 밥솥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최신 정보기술(IT)·가전·완성차 전부에 수 개에서 수십 개씩 탑재된다. A사는 비축한 DDI 물량이 있어 아직 제품 양산까지는 영향을 안 받지만 반도체 공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국내 공장 가동중단(셧다운)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A사 개발 담당자는 "기존에 사용하던 DDI를 갑자기 다른 제품으로 교체할 수도 없어 반도체 부족 사태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며 "국내외 다른 가전 업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IT 업계가 흔하게 쓰는 반도체는 DDI뿐이 아니다. 전원에 관련된 전력관리 반도체(PMIC), 자동차나 IT 기기의 특정 기능·시스템을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도 있다. DDI·PMIC·MCU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기업들이 가장 많이 만드는 범용 반도체 제품에 속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보복 소비, 디지털 대전환으로 인한 IT 수요 폭증, 예상을 뛰어넘은 완성차 수요로 이들마저 재고가 서서히 동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첨단 공정(5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반도체) 기반 반도체들도 재고 부족에 시달린다. 애플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의 첨단 공정 라인을 절반 넘게 선점하고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생산하면서 퀄컴·AMD·엔비디아는 신형 모바일 AP와 PC용 중앙처리장치, 그래픽처리장치 생산을 계획한 물량대로 만들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퀄컴과 엔비디아를 주요 고객사로 둔 삼성전자마저 이들에 물량을 배정해 주느라 자체 개발한 최신 모바일AP(엑시노스 2100·1080)를 계획대로 양산하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아예 구형 공정으로 만드는 반도체는 대만의 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에 외주를 주고, 첨단 공정 기반 제품만 자체 생산한다는 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족 탓에 신형 갤럭시노트 스마트폰 출시도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DB하이텍에서 물량을 배정받지 못한 국내 반도체 설계전문기업(팹리스)들은 중국 SMIC와 UMC 같은 중화권 파운드리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신규 계약은 어렵다. 한 팹리스 대표는 "중화권 파운드리 업체들은 기존 물량을 유지하는 데만도 비용을 30% 더 달라고 하고, 추가 주문은 올린 값에 20~30% 웃돈을 또 요구한다. 코로나19 이전 대비 50% 넘게 비싼 값으로 반도체를 주문해야 한다"고 전했다.

수요 폭증에 최근 잇따른 각종 재해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혹한과 물 부족으로 삼성전자·NXP·인피니언 등 반도체 공장 6곳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부터 셧다운 상태다. NXP를 포함한 일부 공장이 부분적으로 생산을 재개했지만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중 1~2%(12인치 웨이퍼 기준)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공장은 다음달, 늦으면 5월에 가동될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일본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 공장 화재 때문에 더욱 쪼들리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 컨설팅 업체 오토포캐스트 솔루션(AFS)은 올해 연간 글로벌 완성차 생산 차질이 총 193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와중에 TSMC와 UMC 같은 파운드리 기업이 밀집한 대만은 극심한 물 부족으로 지난달부터 신주 반도체 산업단지에 용수 공급을 15% 이상 줄였다.

수에즈운하가 막히면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세계 반도체 공급량의 절반 정도를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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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 오늘 주문하면 연말 돼야 받는다